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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사그라지지 않는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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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칼럼] 사그라지지 않는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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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일본은 우리 땅을 삼키자마자 벚나무를 대대적으로 보급했다. 합병 이듬해인 1911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키고 수천 그루의 벚나무를 심었다. 나무가 제법 자란 1924년부터는 야간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밤 벚꽃놀이’는 이때부터 해를 거르지 않았다.

일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에나 벚나무를 심었다. 관공서∙큰길가∙유원지 등에는 벚꽃이 넘쳤다. 관할 관청에서 책임지고 가꾸도록 했다.

일제는 그러면서 우리 꽃인 무궁화는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아이들에게는 무궁화를 똑바로 쳐다보면 눈동자가 꽃잎처럼 빨갛게 변한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눈병이 생긴다고 겁을 준 것이다.

무궁화에는 비료를 뿌려줘도 안 된다고도 했다. 그 바람에 무궁화는 꽃을 제대로 피울 수 없었다. 잎과 줄기가 약해져서 진딧물이 끓게 되었다.

게다가 양지바른 곳에는 무궁화를 심지 못하게 했다. 햇볕이 잘 안 드는 뒷간이나 쓰레기통 근처에만 심도록 허용했다. 무궁화는 오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야 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유명한 염상섭(廉想涉∙1897∼1963)은 못마땅했다.

“요사이 조선에서도 벚꽃놀이가 풍성풍성한 모양이다.… 조선색과 사꾸라색이 어울릴지 나는 명언(明言)할 수 없다.… 벚꽃은 조선의 하늘같이 청명한 자연색에서는 제 빛을 제 빛대로 내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유착한 기와집 용마름 위로나 오막살이 초가집 울타리 이로 벚꽃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암만해도 ‘식민 사꾸라’라는 것이다.”

이런 저항감도 아랑곳없이 무궁화는 사라지고, 벚꽃만 늘어갔다. 유명한 진해의 벚꽃은 1910년에 2만 그루를 심었던 것이다. 광복 후 일제 잔재를 없앤다고 거의 잘라버렸으나, 1962년에 일본 묘목을 다시 도입해서 심었다. 제주도가 벚나무의 ‘원산지’라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기피할 이유는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벚꽃놀이에 빠지고 있다. 벚꽃의 개화시기가 예년보다 빠르다, 늦어진다 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언론은 언제쯤이 절정이라는 등의 ‘친절한’ 보도를 해마다 거르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고, 일본 제품을 싫어하고, ‘토착 왜구’ 논쟁을 벌여도 벚꽃만큼은 예외다. 위안부 할머니가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줄줄이 세상을 떠나도 벚꽃만큼은 예외다. 3·1운동 100주년인 올해도 다르지 않다.

‘사쿠라’라는 벚꽃의 일본 이름은 우리말 ‘사그라지다’에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활짝 피었다가도 비가 조금만 내리면 곧바로 사그라지는 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사쿠라’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한겨울에도 벚꽃놀이를 즐기자는 것을 보면 그렇다. 충북 제천시가 지난 1월 18일부터 2월 6일까지 도심 일원에서 했다는 ‘겨울 벚꽃축제’다. 축제의 주제를 ‘하얀 눈과 겨울 안에서 미리 만나는 벚꽃의 빛 축제’라고 했다.


이정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