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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홈 디포 (Home Depot) 창업자. 아서 블랭크(Arthur Blank) … 38선 실업의 고통을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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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홈 디포 (Home Depot) 창업자. 아서 블랭크(Arthur Blank) … 38선 실업의 고통을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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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CEO] 홈 디포 (Home Depot) 창업자. 아서 블랭크(Arthur Blank) … 38선 실업의 고통을 딛고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세계 최대의 집 관리 자재 유통업체인 홈디포는 아서 블랭크(Arthur Blank)가 만들었다. 블랭크는 1942년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다. 한국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할아버지 때 러시아에서 넘어온 유대인이다.

그가 14세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했다. 심장마비 돌연사였다. 약사였던 아버지는 그런대로 많은 돈을 벌었다. 아버지는 우편약국 체인을 세워 새로운 도약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쓰러지는 바람에 남아있는 유가족들은 빚더미에 빠졌다. 이때부터 단칸방 생활이 시작된다. 모든 식구들이 같은 방에서 함께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 소년 블랭크의 소원은 자기만의 방을 하나 갖는 것이었다.
학업 성적은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뉴욕 지역 최고의 특목고로 손꼽히는 스타이비슨 고교에 입학했다. 대학은 학문의 고장 보스턴의 뱁슨 칼리지로 진학했다. 경제학과 경영학 분야에서 특히 뛰어난 학교다. 이곳에서 회계학으로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대할 졸업 후에는 저명한 어카운팅 회계인 아서 영 앤 컴퍼니에 입사했다. 여기서 회계실무를 터득한 다음 데이린이란 회사로 옮겼다. 건축자재를 만들어 파는 회사다. 그 자회사인 엘리어트 스토어의 사장까지 승진했다. 직장인으로서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1978년 어느 날 자신이 대표로 있던 스토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 버렸다. 졸지에 자리를 잃은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같은 데이린의 자회사인 핸디댄이라는 주택용 자재관리소에 부사장 자리를 얻었으나 바로 쫓겨난다. 구체적인 해고 사유도 없었다. 관리소에 다른 인물이 낙하산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때 나이 36세였다. 한국식으로 치면 삼팔선인 38세의 벽을 넘지 못하고 도중에 잘렸다. 관리소 사장이던 버나드 마르쿠스(Bernard Marcus)도 이때 함께 물러났다. 사장과 부사장이 함께 추방당한 것.

창졸간에 실업자가 된 블랭크는 실망하지 않았다. 다시는 해고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데이린에서 건축자재를 다룬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의 종합 하우스용품 유통업체를 구상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의 하나인 홈디포의 서막이다. 블랭크는 함께 잘린 마르쿠스를 설득하여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그 마르쿠스가 지금의 홈디포 이사회 의장이다. 둘이 뛰어다니며 자본을 조달한 다음 그 이듬해인 1979년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 홈디포 1호점을 냈다.

블랭크는 그로부터 1999년까지 최고경영자(CEO)로 근무했다. 20년 동안 대표로 재직하면서 홈디포의 시장가치를 무려 2만9000배 올렸다. 자본금 200만달러를 당시 가액으로 시가총액 500억달러의 회사로 키워낸 것. 블랭크는 동업자인 마르쿠스에게 CEO를 넘기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2001년에는 그마저도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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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AMB라는 재단을 설립해 자산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신의 가난했던 어릴 적을 회상하면서 돈이 없어 공부를 하기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다. 모교인 뱁슨 칼리지에 창업대학을 만들어 사업가들을 길러내기도 한다.

요즈음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프로 스포츠다. 조지아 주 연고의 아메리칸 풋볼 팀인 애틀랜타 팔콘스(Falcons)를 사들여 구단주로 직접 이끌어가고 있다. 만년 최하위의 팔콘스를 맡아 3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홈디포에서 갈고 닦은 경영실력이 프로구단에서도 빛을 발한 것이다. 쉬는 시간에 인기연예인을 데려다 관중들과 연결시켜준 것도 블랭크가 제일 먼저 도입한 아이디어다. 최근에는 유럽식 축구인 사커팀도 창단했다. 이 역시 애틀랜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팀의 이름은 애틀랜타 유나이티드 FC로 정했다. 2017년부터 공식 경기에 나선다. 미국에서도 사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이 팀을 기반으로 미국이 월드컵 사커에서 우승하는 대업을 이루겠다는 웅장한 꿈도 꾸고 있다. 미국 남부의 최고 명문의 하나인 에모리 대학 재단이사를 맡고 있기도 하다. 스테이플과 콕스 방송의 이사도 겸하고 있다.


김대호 소장/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