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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약 거품' 제대로 보여준 한미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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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약 거품' 제대로 보여준 한미약품

생활경제부 임소현 기자.
생활경제부 임소현 기자.
[글로벌이코노믹 임소현 기자] 한미약품이 ‘잭팟’을 터뜨린 2015년. 그 해 11월 20일 결국 한미약품의 주가가 79만1000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한미약품이 2010년 처음 코스닥시장에 입성할 때의 주가는 7만6739원이었다. 경기방어주였던 제약‧바이오주, ‘다크호스’에 불과했던 한미약품 주가가 5년만에 10배 넘게 뛰어버리는 역사를 쓰는 순간이었다.

한미약품은 2015년 대형 기술수출계약을 잇따라 성공시켰다. 다국적 제약사 일리아릴리와 면역질환치료제 HM71224를 7800억원에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고 같은 달 미국 항암제 개발전문 제약사 스펙트럼파마수티컬즈에 항암신약물질 포지오티닙을 비공개 금액으로 수출, 7월에는 베링거인겔하임과 8500억원에 항암신약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에 당뇨 치료제 포트폴리오 '퀀텀프로젝트' 기술을 5조원 규모에 수출했다. 글로벌제약업계 1위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얀센이 한미약품과 1조원 신약 기술 수출계약을 맺는 등 이 어마어마한 계약들을 한 해에만 잇따라 따냈다.

그때부터였다. 제약업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R&D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신약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당시 국내 제약업계는 리베이트 천국이라는 오명을 얻고 복제약 영업으로 돈을 벌다가 마땅치 않으면 편의점에서 비타민 드링크와 음료수 정도로 매출을 올린다는 안 좋은 인식이 팽배해진 상황이었다.

2010년 리베이트를 준 업체와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가 모두 처벌되는 쌍벌제가 도입되면서 국내 제약사들의 매출이 대폭 꺾였다. 한미약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미약품은 당시 창립 이후 첫 적자를 기록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위기 돌파 카드로 꺼낸 것이 바로 신약개발이었다.

이른바 ‘한미약품의 신화’가 업계 사이에 핫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신약개발 바람은 생각보다 더 거세게 불었다. 업계는 신약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한미약품의 성과는 더욱 부풀려졌다. 리스크는 안중에도 없었다. 주가는 신약 관련 작은 소식에도 점점 널뛰기를 했다.

거품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3년을 넘기지 못한 신약 개발 바람이 올리타 개발 중단과 함께 조금은 잠잠해지는 분위기다. 사람들이 전 세계에 대한민국 제약사의 기술을 알릴 자랑스러운 약물이라고 생각했던 올리타는 이제 개발이 중단되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경쟁약의 선방이었다. 아무리 올리타가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이미 같은 효능의 경쟁사 약이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다.

한미약품이 처음 의도와는 달리 주가에 너무 집착하다 생긴 참사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한미약품은 이미 ‘늑장 공시’ 논란에 휩싸인 업체다. 고의로 공시 시기를 조정했다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제약업체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신약개발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타이밍’ 싸움에 사용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신약 개발이 쉬운 것이 아니다. 신약 개발이 시작돼 임상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돼 개발이 중단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가능성을 엿봤던 신약 중 성공적으로 개발이 완료되는 약은 1~2%에 달할 정도로 가능성이 낮다. 개발 중단을 비난하며 또 다른 신약 개발 도전을 막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한미약품의 올리타 개발 중단은 비난받을 일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경쟁약이 이미 국내 식품당국의 허가를 받을 때까지 한눈을 판 건 비난받을 일이다. 리스크에 대한 고려 없이 신약 개발 거품이 커지는 동안 한미약품은 정작 가야할 길을 가지 않고 숫자만 센 것이 아닌지.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임소현 기자 ssosso6675@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