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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16)] 무엇이든 시작하기에 참 좋은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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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16)] 무엇이든 시작하기에 참 좋은 나이

"인생이라는 긴 여행은 참으로 흥미진진했지만, 이 세상의 그 무엇도 - 어쩌면 인간의 어리석음은 예외일 수 있겠지만 - 영원할 수 없는 법이다." (p. 495)

해가 갈수록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뵈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온갖 질병에 몸이 괴롭고 마음마저 나약해진 인생의 끝자락에서 후회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보험사마다 떠들어 대지만 내 주변의 어르신만 보아도 80세를 넘기면 대부분 거동부터 불편해지신다. 아무리 멋지게 포장을 해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나의 이런 관심사 때문인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어도 읽지 않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펼쳐 들었다. 100세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설정 자체만으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100세 노인의 신체적인 조건을 고려할 때 과연 어떤 스토리가 가능할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많이 엇갈린다. 정서적으로 유머코드가 잘 맞지 않아 다소 지루하고 줄거리의 짜임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의견들이 있지만, 요나스 요나손이 작품에서 보여준 놀라운 상상력과 기발함은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100세 생일을 맞은 알란은 몰래 창문 너머 세상으로 모험을 떠난다. 돈이 가득 들어있는 트렁크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알란과 도피의 과정에서 만난 개성만점의 친구들 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알란이 살아온 100년 삶의 에피소드와 현재의 도피여행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면서 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요나스 요나손의 놀라운 상상력은 바로 알란의 100년 삶의 이야기 속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알란을 교묘하게 등장시킴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창문 너머로 도망친 우리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수많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불사조 같은 모습도 아니다. 대부분은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아서 주인공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 긴장하며 읽다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지만 살면서 내 의지대로 되는 경우보다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당연한 결말이 아닐까.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라며 담담하게 인생의 거친 풍파 앞에 맞서는 알란의 모습은 그 어떤 주인공의 모습보다 멋지다.

무엇이든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된다면, 실패할까봐 앞으로 나아가기 두렵다면 용감한 100세 노인 알란을 만나보자. 인생에는 영원한 것도 없지만 끝도 없기에 지금 당신이 몇 살이든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기에 참 좋은 나이라는 걸 잊지 말자.
100년 동안 죽음의 문턱을 셀 수 없이 넘나들면서도 늘 긍정적인 말도 안 되는 허구로 가득한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음속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인생에는 영원한 것도 없지만 끝도 없다는 것이다.
안명숙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인천회장(인천효성남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