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갈수록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뵈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온갖 질병에 몸이 괴롭고 마음마저 나약해진 인생의 끝자락에서 후회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보험사마다 떠들어 대지만 내 주변의 어르신만 보아도 80세를 넘기면 대부분 거동부터 불편해지신다. 아무리 멋지게 포장을 해도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은 많이 엇갈린다. 정서적으로 유머코드가 잘 맞지 않아 다소 지루하고 줄거리의 짜임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의견들이 있지만, 요나스 요나손이 작품에서 보여준 놀라운 상상력과 기발함은 이 책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100세 생일을 맞은 알란은 몰래 창문 너머 세상으로 모험을 떠난다. 돈이 가득 들어있는 트렁크를 우연히 손에 넣게 된 알란과 도피의 과정에서 만난 개성만점의 친구들 이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알란이 살아온 100년 삶의 에피소드와 현재의 도피여행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면서 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요나스 요나손의 놀라운 상상력은 바로 알란의 100년 삶의 이야기 속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알란을 교묘하게 등장시킴으로써 웃음을 자아낸다.
창문 너머로 도망친 우리의 주인공 할아버지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수많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멋지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불사조 같은 모습도 아니다. 대부분은 기가 막히게 운이 좋아서 주인공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 긴장하며 읽다가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지만 살면서 내 의지대로 되는 경우보다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당연한 결말이 아닐까. 세상만사는 그 자체일 뿐이고, 앞으로도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자체일 뿐이라며 담담하게 인생의 거친 풍파 앞에 맞서는 알란의 모습은 그 어떤 주인공의 모습보다 멋지다.
무엇이든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된다면, 실패할까봐 앞으로 나아가기 두렵다면 용감한 100세 노인 알란을 만나보자. 인생에는 영원한 것도 없지만 끝도 없기에 지금 당신이 몇 살이든 무언가를 시작하고 도전하기에 참 좋은 나이라는 걸 잊지 말자.
안명숙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인천회장(인천효성남초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