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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15)]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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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515)]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볶음밥의 순수는 불의 기운으로 밥알을 하나하나 감싸듯 익히는 데 있다. 요리사가 웍(wok·중국 요리용 팬)을 흔들 때마다 밥알이 몇 번씩 천장까지 솟을 듯 키질을 하며, 철판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뜨거운 기름에 튀겨지듯 익혀져야 맛을 낸다. 노련한 요리사는 웍에 엄청난 화력의 불을 붙인다. 우우웅~ 제트 엔진 같은 화기가 치솟고 그 열이 웍에 모두 전달되면 기름을 두른다.

치이익~ 뜨거운 연기를 내며 기름이 최고의 온도에 도달한다. 요리사는 그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기름의 온도를 밀어붙인다. 그거야말로 프로의 자세다. 밥알과 재료가 그때 가서야 웍에 던져진다. 볶음밥은 그래서 집에서 먹는 요리가 아니다. 웍을 워낙 흔들어 왼팔이 기형적으로 더 굵어진 요리사가 해주는 밥이다. 앞서 L형의 왼 팔뚝은, 할 수만 있다면 민중사의 인간문화재, 민속박물관에 전시하고 싶다. 뽀빠이처럼 두툼하고, 기름 화상과 칼자국으로 아름답게 도배된 상징물이니까."(2부. L형의 팔뚝이 민속박물관에 가야 할 이유 | 볶음밥의 순수, 나시고렝 中/ p. 216)
제 아침 일찍 창포원 학교 텃밭에 나가 깻잎과 고추를 거두고 소꿉놀이 삼아 가을 상추를 몇 포기 심었습니다. 한참 후 따가운 햇볕에 도망치듯 북카페로 달려가 내가 좋아하는 팥 라떼를 마시며, 마음에 드는 두 권의 책을 골라 들고 잠시 고민(?)하다 선택한 책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에세이집입니다. 그 이유는 요즘 TV프로그램의 대세가 음식인지라 왠지 소소한 일상에 소박한 즐거움을 듬뿍 안겨 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책을 쓴 박찬일은 셰프이며, 글 쓰는 요리사로 알려져 있다고 하네요. 어쩐지 책을 읽어가면서 작가를 뺨칠 정도로 음식을 묘사하는 놀라운 문장 실력에 감탄이 절로 났답니다. 이외에도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보통날의 파스타', '와인 스캔들', '어쨋든, 잇태리' 등 최근작도 꽤 많이 있답니다. 특히 이탈리아 요리를 좋아하는 분들께서는 작가가 이탈리아 유학파라니 일거양득 이상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작가의 문장체가 무지 마음에 들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글이 너무 많아 마구 마구 빠져들며 정신없이 읽은 책입니다. 40-50대를 넘어선 분들이 읽으면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오고, 다시 한 번 만들어보고 싶은 음식들도 나오리라 여겨집니다. 20-30대가 읽으면 어른들의 옛날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왠지 저는 읽는 도중 슬프고 서러운 음식이 많이 떠올라 에어컨 찬바람의 추위 속에서 더 슬펐습니다. 또한 아무런 부담감 없이 재미있고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이 책 속에서 소개하는 형형색색의 맛을 가진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기쁨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 책은 또 다시 쉽게 다른 책을 친구로 만들어 주는 계기도 마련해 줍니다.

잠시 소소한 일상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지는 체험을 통해, 지천에 널려있는 먹거리들의 맛따라 멋있는 인생의 추억 여행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을 떠올리면서.
이원정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아침독서편지 연구위원(도봉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