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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53화)] 자전거, 그 추억의 뒤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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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학교, 최고의 아이들(53화)] 자전거, 그 추억의 뒤안길

“원빈아, 조심해서 자전거를 타야지, 그렇게 교문을 무지막지하게 들어오면 위험하잖아, 스쿨버스도 들어오고, 선생님들 출근차량도 들어오고, 부모님들의 차량도 들어오잖니, 조심허자.”

“야, 조심헐께유, 근디 자전거는 요렇코롬 스피드를 즐겨야 헌당께요, 암튼 조심헐께유, 쌤.”
“지난번처럼 미끄러져서 또 까진데 또 까질까봐 불안 불안하다 잉, 원빈아, 이래서 쌤은 원빈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나봐.”

“지두, 쌤, 사랑혀유, 정말 조심조심 탈께유. 걱정마세유.”

원빈이와의 등교시간의 짧은 대화다.

원빈이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 인근 마을에서 등교한다. 가끔은 킥보드를 담임선생님 몰래 학교에 가지고 와서 스피드를 즐기다가 무릎이나 손, 발 등에 작은 상처투성이를 만들곤 한다.

1학기 2차고사와 방과후학교가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다 집으로 돌아간 쓸쓸한 정원을 거닐다 눈이 머문 곳이 바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자전거 주차장이다. 참 정겹게도 4대의 자전거가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 대화를 나누는 듯하다.

학창시절, 가난함의 대명사로 내 소유의 자전거로 등하교를 꿈꾸던 나에게 아이들의 자전거는 그 시절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매개체가 되었다. 30분이 넘게 걸어서 매일 등하교를 했던 나와 대다수의 친구들. 자전거로 등하교하던 친구가 한 번이라도 태워주면 얼마나 신이 났던지? 참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도 잠시, 역시 교사의 눈으로 다가온 것은 ‘안전’, 바로 ‘안전’이다. 자전거 주차장을 지척에 둔 정문에는 차량이나 사람, 사물의 움직임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안전 거울’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은 학교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 이전에도 ‘안전’에 대한 지도나 교육은 지속되었지만, 아이들이 자전거나 킥보드를 자유롭게 탈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헬멧과 안전장치를 하지 않고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는 것은 ‘안전불감증’의 대표적 행동이다. 스쿨버스나 시내버스 같은 통학버스, 부모님의 자동차 등이 우리 아이들의 등하교 길 안전을 얼마나 위협하고 있는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등하교를 하던 그 시절, 조금은 힘이 들고 짜증도 동반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친구가 있었고 마냥 즐거운 이야기들이 있었다. 대화가 부족한 요즘, 그 시절과 바꾸고 싶은 것은, 등하교 길의 ‘대화’가 아닐까?

30분, 아니 1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하교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가던 친구들도 친구들과 어울려 대화하고 싶어 자전거에서 내려 같이 걸었던 그 길들을 자동차가 주인이 된 지 오래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등이 학교 앞 도로를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다. 반갑지 않은 녀석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 학교 아이들은 아직 오토바이를 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조회와 종회 시간에 오토바이 탑승의 위험에 대해 수차누차 교육을 한다. 그렇지만, 시골에 학교가 위치하다 보니 집에 돌아가 부모님의 오토바이를 몰래 몰래 타는 녀석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울 아이들을 믿고 안전하게 학교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방법이 최선이지 않겠는가.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
원빈이와 자전거를 통해 다시 돌아 본 ‘안전불감증’은 비단 학교현장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안전불감증’에 포인트를 맞추다보면,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정 안전하게 살아가며,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방법론 모색에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자전거와 관련한 시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다.

임창현 시인의 <그리운 자전거>가 눈에 들어온다. 시인의 <그리운 자전거>를 읽으며, 자전거에 대한 추억에 잠시나마 머물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리운 자전거

임창현

오늘도 참 춥지요 아버지?
겨울이 봄처럼 늘 포근하더니
오늘은 오랜만에 큰 눈이 내리고 추워졌어요
아버지도 저처럼 비를 싫어하셨고
저도 아버지처럼 눈을 좋아했는데
아버지 오늘은 아버지의 집에도 눈이 많이 내렸어요
그 가을 아버지 제 손 잡고 반짝이는 자갈 흐르는 개여울 건널때는
둘이서 바지 걷어올리고 자전거를 들고 건넜지요
은륜에 맺혔다 떨어지는 물방울 속 찬란했던 그 햇빛
잊을 수가 없어요
그 여울 건너 사과가 천국처럼 붉게 타던 과수원 돌아
아버지 친구 집에 갔던 그 가을 어제 같은데
제가 낳은 아들이 그날의 저보다 더 커버렸어요

그동안 아버지는 긴 잠 참 오래도 드셨네요
아버지 그래요 그날 밤 우리는 늦가을
쏟아지는 빗줄기 맞으며
오래된 포장길 튀는 자전거
아버지 허리 꼭 껴안고 빗속, 빗속 밤길 달렸지요
사십구 년 전 바로 오늘 그날 그 자전거
오늘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그 무엇 다라도 주고 찾고 싶은 자전거

아버지 저와 제 아들은 그때의 아버지와 저처럼
같이 자전거 타고 갈 곳도 시간도 없어요
버지니아 마운트 컴포트 자리 낯설어 외로우실 아버지
아버지도 아버지 찾아가실 길 너무 먼 것 오늘 알았어요
까맣게 막힌 길 황해도 사리원 길 정말 너무 멀지요?
할아버지와 자전거 타고 싶어 가고 싶을 아버지
아버지 참으로 미안해요


* 임창현 시인은 경향신문, 금융, 은행계 등에 에세이 발표, 시집: <그리고 또 그리고>, <추억은 팔지 않습니다>, 워싱턴팡세, <우리에겐 블랙박스 가 없다>, 블랙박스, 현재 중앙일보에(2007~) 시 현장비평 '시가 있는 벤치'를 주간 집필하고 있다.
박여범 용북중 교사(문학박사·문학평론가)